삼국지 초기 반동탁 연합군인 18로 제후군이 지리멸렬하게 무너지고 난 다음 조조는 능력을 발휘해서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었다. 그러던 193년, 조조가 원술과 싸우는 중인데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서주 자사 도겸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도겸은 인근의 도적 떼와 전략적으로 연합하고 있었는데 도적 출신 병사들이 영주와 서주의 경계 지역을 약탈하는 못된 짓을 자주 저지르곤 했던 것이다. 조조는 원술 격파를 마친 뒤 가을에 대규모 군사로 도겸을 격파하고 10여 개의 성을 점령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체가 강을 메울 정도로
조조는 관도대전과 여양 전투를 이기고 204년 원소의 근거지인 업성을 점령해서 최강자가 되었다. 어쩌면 공융은 자신이 그런 조조 앞에 서 있는 당랑거철(螳螂拒轍-달려오는 수레를 가로막고 서 있는 사마귀)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을까. 서서히 그의 누적된 불만이 조조의 인격에 대한 비꼼과 비난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조는 원소를 물리친 후 한동안 하북 지방 평정에 전념했다. 그 마무리가 오환정벌이다. 오환 지방은 흉노족들이 거주하던 장성 이북을 말한다. 흉노족은 가을이면 장성을 넘어 침입해 와서 사람을 죽이고 재물과 곡식, 여자들을
고작 25세인데 일련의 유언 형식으로 지시하며 침착하고 지혜롭고 명확하게 국가 대사를 처리하는 손책의 모습은 압권이다. 이 아까운 젊은 영웅도 여러 교훈을 남긴다.첫째,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많은 사람을 이끄는 리더는 난감하고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조직이 크고 일이 중요할수록 대립과 갈등이 많다. 서로 대립하고 상처를 주다가 최악의 경우 원수도 된다. 어쩔 수 없을 때도 있고 감수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원수 한 명은 친구 열 명보다 힘이 세다. 원수를 안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덜 만들 수는 있다. 방법은 후
딸의 결혼 날이 두어 주 앞으로 다가왔다. 평생 혼자 살 듯하던 녀석이 결혼하겠다고 불쑥 선언해서 모두를 놀라게 한 지도 제법 되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싶으니 마음이 나날이 바빠진다. 요즘 눈이 부쩍 흐릿하고 뭔가 낀 듯하여 눈을 자주 비비고 안경을 벗어서 닦는다. 오늘은 결혼식도 다가오니 안경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안경 가게에 들러 시력검사를 하는데 딸이 드레스 피팅을 하는 중이라며 핸드폰 사진을 여러 장 보냈다. 그리고 어느 것이 제일 예쁘냐고 물었다. 눈처럼 하얀 드레스에 은빛 관을 쓰고 수줍은 듯 꿈꾸는 듯 웃
삼국지 초기, 원소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지방 호족 가문의 배경을 가진 그는 비록 가문의 서자 출신이었으나, 풍모와 개인적인 자질로 적자인 동생 원술을 압도해 지위를 공고하며, 청류파의 세력을 이끌다시피 했다. 초기 근거지를 확보한 뒤에는 고속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원소의 세력 확장과 여양 전투 과정에는 몇가지 실책이 드러난다. 첫째, 급속한 외형 성장이 조직에 도움이 됐는가다. 성공의 결과로 조직은 커지게 된다. 그런데 규모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이 같은 뜻이 아닐 수 있다. 커진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낭비와 비효
연애한다는 딸이 주말인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 있다. 밖으로만 돌고 오리무중이 되어서 저녁만 되면 내 눈이 벽시계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던 녀석이, 방구석에 있다. 애인이 생겼다는 녀석이, 2주째 데이트를 안 하다니, 분명 이상 징조다. 걱정되는 마음에 데이트 없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그냥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잠시 떨어져 있자고 했단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좀 피곤해서"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유추해 보니 며칠 전, 사람 관계가 왜 이리 전쟁 같으냐던 녀석의 푸념이 떠올랐다. 녀석은 요즘
삼국지 속 떨어진 별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원소다. 그는 출신 배경부터 남다르다. 사세삼공(四世三公-삼대에 걸쳐 황제를 직접 모신 삼 공을 배출) 가문 출신에다 잘 배우고 매우 유리하게 출발했다. 젊을 때는 무리를 끌도 다니며 사회적 물의(요즘 재벌이나 고위층 자제의 뉴스와 비슷한?)도 좀 일으켰던 것 같다. 당시 권력층들이 시대와 권력에 저항하는 불손한 면이 있다고 보았다 하니 말이다. 당시 한나라는 위에서부터 철저히 썩어 있었다. 문고리 세력이 황제를 에워싸고 국정을 농단했고 백성의 삶을 돌보는 민생은 간 곳이 없었다. 탐
지인이 인터넷에 인터뷰 동영상을 올렸다. 그가 예전에 절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영상이었다.하루는 스님을 모시고 동네 노래방에 갔다. 노래를 좋아하는 스님은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셨다. 그런데 문제는 음정과 박자가 엉망인 것. 서너 곡을 계속 부른 뒤에 지인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지인이 노래를 마치자 스님이 다시 마이크를 받아서 박자와 음정이 사라진 노래를 계속 부르셨다. 연세 높으신 스님이 즐거워하시는데 어쩌겠는가. 그날 노래방 나들이는 그렇게 마치고 돌아왔다. 며칠 후 스님과 차를 마시다가 노래방 갔던
부모 역할은 등산과 비슷하다. 언덕 하나를 숨이 차게 넘었더니 더 큰 언덕이 끝없이 이어지는 등성이를 넘어야 한다. 자질구레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넘어 대학이라는 언덕에 올랐으니 이제 좀 쉴 수 있겠지 했는데 웬 걸, 취업이라는 더 높은 절벽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도 취업을 하고 아침에 출근하는 딸의 뒷모습에 마음을 놓으며 돌아서는 순간, 퍼뜩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저 성질머리가 직장에 적응은 잘할지, 능력이 부족해서 뒤처지고 혼나지 않을지, 동료들과는 잘 지낼지 생각이 복잡하다. 안보이던
자식이 주는 기쁨과 아픔의 총량은 같다고 한다. 즐거운 만큼 힘들기도 하다는 말이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대학 진학을 가장 힘들었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별 어려움 없이 제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 주어서 고마웠다. 입학하는 날 나는 대학 생활 동안의 목표를 세워보라면서, 한 번은 올 에이(A)를 받는 것, 인생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을 찾는 것, 진실한 사랑을 해 보는 것을 권했다. 딸은 그 모두를 욕심냈던 것 같다. 힘들다는 올 에이플러스(A+) 성적을 받았고 인생 진로의 방향을 정하고 체계적으로 준비도 했다. 어느 날은 남자